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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신의 나무그림​

나무를 소재로 한 간결한 구조 및 원색의 조합

신항섭 / 미술평론가

   나무라는 하나의 소재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화가들이 적지 않다. 나무라는 흔한 소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형태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형적인 변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줄기와 가지 그리고 잎으로 구분되는 나무의 형태는 회화적인 소재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다. 더구나 대지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믿음직한 형태는 생명의 상징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즉 내용을 담는데도 적합한 소재인 것이다.

   류영신은 첫 개인전 이후 줄곧 나무만을 소재로 하여 작업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실재하는 나무의 모양 그대로를 재현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줄기와 가지 그리고 잎으로 구성되는 나무의 형태를 수용하되 독자적인 형식을 모색해왔다. 따라서 생략 및 단순화 또는 왜곡이라는 방법으로 재해석하는 식이었다. 즉, 나무의 형태는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느낌과는 또 다른 회화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놓는데 의미를 두었다.

   그의 경우처럼 실제의 나무가 사실성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화가의 조형적인 상상력은 날개를 얻게 된다. 나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형태를 유지하는 가운데 보다 자유로운 조형적인 해석으로 개별적인 형식미를 탐색할 수 있기에 그렇다. 실제로 그는 나무의 형상을 기본으로 하여 실제와는 엄연히 다른 조형미를 관철하고자 노력해왔다. 이와 같은 접근방식을 통해 최근에는 개별적인 형식미에 한걸음 더 근접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작나무와 더불어 미루나무라는 두 가지 나무를 다루고 있다. 물론 단순화하고 생략적이기에 두 나무를 분별한다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의 작업에서 그 형태적인 해석에서는 큰 차이를 드러낸다. 자작나무 연작이 사실적인 공간에 머물러 있다면, 미루나무 연작은 평면적인 구성을 통해 현실과 유리된 현대적인 조형공간을 점유한다.

   자작나무 연작은 가지를 생략한 채 줄기와 잎으로만 구성된다. 명료한 형태를 보여주는 하얀 줄기와 무성한 잎들이 어우러지는 지극히 간결한 구성이다. 전체적인 인상은 단순하고 간결하지만 거기에서는 사실적인 공간감이 느껴진다. 실상의 압축 및 요약이라는 조형어법을 적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현실감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이미지만으로 형태를 압축함으로써 현실적인 공간감이 유지되는 까닭이다.

   그는 여기에서 자작나무를 의인화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큰 줄기가 곧게 서거나 또는 이리저리 구부러지는 모양이 마치 러시아의 여인들을 연상시킨다. 흰색의 자작나무가 러시아 여인의 하얀 피부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알면 납득하기 어렵지 않다. 유연하고 매끄러운 형태로 묘사되는 자작나무 연작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나무이기 전에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지향하는 조형세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미루나무를 소재로 하는 작업은 자작나무보다 한층 간결하고 대담한 구성이 독특하다. 생략과 형태 변형이라는 조형어법을 통해 반추상화 형식을 추구한다. 특히 평면적인 이미지로 압축되는 형태해석은 기존의 자작나무 연작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미루나무는 곧게 뻗은 키 큰 줄기에 비해 가지가 작아 키다리 같은 모양이다. 이와 같은 형태적인 특징을 살려 간명한 평면적인 이미지로 해석하고 있다.

   더구나 기하학적인 이미지로 단순화함으로써 강직하면서도 명확한 형태미를 갖게 된다. 미루나무 연작에서는 사실적인 공간감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완벽한 평면적인 해석이기 때문이다. 나무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단순화하는 새로운 조형적인 해석은 평면과 선을 혼용하는 형태로 제시된다. 이는 순수한 조형공간을 지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일이다. 여기에서 나무의 나이테를 상징하는 선의 반복적인 나열은 순수한 조형미를 관철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나 다름없다.

이렇듯이 오랜 동안 나무를 소재로 작업해온 그는 사실성과 평면성을 교묘히 교직하여 자신만의 조형적인 틀을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자작나무 연작은 몇 가지 원색의 배합 및 배열을 통해 시각적인 즐거움을 유발하는 감성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대담한 보색을 기반으로 하는 강렬한 인상의 색채이미지와 간결한 평면적인 이미지의 조합은 스스로에게 개별적인 형식미의 가능성을 묻고 있다.

   최근에 시작한 미루나무 연작은 자작나무 연작을 통해 익힌 조형 감각이 한 단계 진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담대하게 느껴질 만큼 단순하게 처리되는 평면적인 이미지가 화면의 상당부분을 장악함으로써 강인한 인상을 준다. 특히 보색을 이용하는 극단적인 색채대비는 시각적인 호소력이 강해 감상자의 시선을 현혹하기에 충분하다. 색채이미지로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설득력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강렬한 색채대비는 색채포름이 만들어내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Ryu YoungSin.Western Painter From SEOUL.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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