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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신 : 자작나무 숲으로부터의 시각적 운율

Robert C. Morgan

   지난 5년간 자작나무의 우아함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던 류영신은 출중한 현대 화가이다. 한국의 많은 화가들처럼, 그녀의 관점 역시 사물에 깃든 자연의 기, 혹은 고요한 에너지를 마음 속에 그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생동감 가득한 자작나무의 기둥, 가지, 나뭇잎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포착했을 뿐 아니라, 숲 속 작은 빈터를 살랑이는 바람 한 줄기까지 관찰한다. 이런 시각적 영감을 얻은 류영신은 그 율동적인 감각을 한 편의 서사시로 화폭에 담는다. 자연에 대한 경이는 화가의 훙미를 불러 일으키는 요소이며, 자작나무 숲에서 머무르며 얻은 경험을 통해 그녀의 자연에 대한 인식을 변형시키는데 집중하도록 한다.

 

   그렇다면 왜 자작나무인가? 자작나무는 강하면서도 그 움직임이 부드럽다. 나무는 이런 속성을 잘 드러내면서 그 자리를 지킨다. 자작나무는 종종 시인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는데, 미국의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Frost) 역시 그의 유려한 문장 속에 자작나무를 담았다. 물론, 한국의 시인들도 자작나무를 작품 속에 등장시켰다. 나뭇가지 속에 흐르는 힘, 잔잔한 바람결에도 거스르지 않고 따라 움직이는 놀라울 정도의 유연성, 흔들렸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자작나무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대위법에 따라 움직이면서 해방된 힘을 상징한다. 자작나무는 바람을 거스르며 맞서기보다는 제 자리를 지키며 지낸다. 이런 성질 덕에 자작나무는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의 조선시대 수묵화 화가들로부터 인기를 얻었고, 동 시대 중국 청나라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작나무는 인내와 행복의 본보기이다.

 

   류영신은 작품에 유화 물감을 주로 사용하는데, 어째서 서양화를 공부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전통적인 화법과 붓 터치에 신경 쓰면서도 현재로서는 유화 색소를 더 즐겨쓰는 듯 하다. 어쩌면 이것이 그녀를 과거로부터 자유롭게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최소한 그 전통적인 기법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노력하며 재기 넘치게 작품에 접근하는 류영신은 자작나무를 주제로 삼을 때 직면하게 되는 도전 - 조화로움의 추구를 과감하게 받아들인다. 류영신은 두 가지 화법을 차용한다. 하나는 사실적인 접근방법인데, 19세기 후반의 인상주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합리적인 요소들과 유사하다. 다른 하나는 비합리적인 색채 사용으로서, 20세기 초반에 마티스(Matisse)나 블라맹크(Vlaminck) 같은 야수파(Fauvists) 화가들로 인해 유명해진 방법이다. 두 가지 기법 모두 프랑스 화풍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고도의 채도 재현률을 요구한다. 두 말 할 필요 없이, 류영신은 화법의 기교 뿐 아니라 캔버스 전체에 빛의 명암을 자연스럽게 드리우는 색채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모두 완벽하게 익혔음이 틀립없다.

 

   클러스터(Cluster) 연작은 작품이 두 개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선명하고 각진 나무 기둥이 작품의 전면에 배치되어 있는 “하드 에지”(hard edge: 기하학적 도형과 선명한 윤곽의 추상 회화) 바리에이션이다. 그러나 멋들어지게 굴곡진 나무가 주제인 2011-13년의 초기 자작나무 숲 작품은, 클러스터 바리에이션으로 이어지면서 점차 기하학적 이미지로 변하게 된다. 2014년 말에 이르러서는 류영신의 작품 속 흰색에서 언뜻 빛이 반짝인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클러스터 연작에서 역시 마찬가지인데, 각진 나무로부터 여체를 닮은 형태로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작가가 2008년부터 여체의 누드를 그리며 준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부 누드 스케치는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되기도 했다) 각진 나무에서 추상적인 여체의 이미지로 변화한 그 아이디어가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알 수 있다. 2014년 말에 이르러서는 유화 작품 속의 자작나무는 나무 기둥보다는 여체에 더 가까운 형태가 되었다. 여체화한 형태의 표현은 자연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우리 몸의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류영신은 색채를 훌룽하게 다룬다. 이 사실은 작가의 두 개 연작, 대표적인 자작나무 숲 시리즈와 추상적인 이미지의 클러스터 시리즈에서 충분히 나타난다. 자작나무 숲 시리즈에서 인상주의적 느낌을 유지하고 있다면, 클러스터 시리즈에서는 팝 아트로 선회하고 있다. 각각의 연작에서 색채는 주제의 형태에 따라 달리 작용하고 있다. 자작나무 숲 시리즈에서의 색채는 크롬처럼 반짝이는 금속 느낌의 그라데이션이 강약을 달리하며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반면 클러스터 시리즈에서는 나무 기둥/여체의 형태가 배경과 동떨어져 있는데, 이런 대비 덕에 배경 그 자체도 전면에 나선 각진 나무만큼 작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클러스터 시리즈는 미국 화가 스튜어트 데이비스(Stuart Davis)가 사용한 초기 팝 아트 구성 요소와 닮은 점이 있다.

 

   클러스터 연작에서 나타난 선명한 색채의 형태는 두 개의 패널을 사용한 2013년 작품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우리는 터키색 한 줄기 흐르는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흰 색이 점점이 흩뿌려져 5개의 보라색 나무 기둥이 노란색 대지로부터 솟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클러스터 연작에서도 각각의 형태는 정체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데, 여기서는 음과 양의 전환이 하늘과 나무의 실루엣이 개슈탈트적인 상호 작용으로 표현되고 있다. 음의 영역이 맑은 파란색으로 칠해진 반면, 양의 영역은 흐르는 듯한 주황색과 엮인 짙은 남색으로 칠해져 있다. 왼쪽 상단에는 부드러운 붉은 색과 노란색이 칠해져 있는데, 겨울의 해가 솟아오르는, 혹은 지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청기사, 블라우에 라이터(Der Blaue Reiter)들의 작품처럼, 두 작품에서 쓰인 색채의 효과는 도시 환경 속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색채와 더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숲에서 느낀 감정적인 요소와 계절마다 흐르는 생생한 자연의 색채를 함께 표현하기도 한다.


   류영신의 작품의 깊이를 한 눈에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2005-2010년에 그린 초기의 꽃 그림에서도 구성은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무늬와 유기적인 현실주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격식을 차린 정밀함과 자유로운 감정적 요소를 나타내고 있다. 류영신은 다작을 하는 화가인데, 그녀의 화풍이 다양한 가능성을 수용하고 치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최근 시도한 나무의 여체화, 여체의 나무화는 호기심을 자아내는 매력적인 모호함을 지니고 있다. 확실히, 가장 설득력 있는 낭만적인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들라크루아(Delacroix)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예술가는 모호함을 구성 할 줄 안다. 한 가지 형태는 결코 하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그 하나도 또 다른 무언가로 이어질 수 있다. 현대적인 미적 감각에 입각한 이 같은 화법은 화가 류영신의 작품 속에서도 그 울림을 이어가고 있다.


  학자이자 시인, 예술가, 큐레이터, 비평가인 로버트.C.모건(Robert C. Morgan)은 한국과 중국의 현대 미술에 대한 글을 자주 쓴다. 그는 아시안 아트 뉴스(Asian Art News)의 뉴욕 에디터이며, 뉴욕의 시각 예술 대학교(School of Visual Arts in New York)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모건 박사는 2005년에 한국으로 유학 온 풀브라이트 장학생이었다.

©Ryu YoungSin.Western Painter From SEOUL.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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